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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평화작가 1호 한한국 작가
"평화란 상대인정하고 신뢰하는 속에 유지되는 것"

한한국작가 작업사진나라 한(韓), 나라 한(韓), 나라 국(國). 세계평화작가 1호 한한국(韓韓國) 작가의 한자이름이다. 한석봉의 후손이자 1993년 25세의 나이로 ‘세계평화지도’를 6종의 새로운 한글서체로 개발하고, 디자인해 주목을 받은 주인공이다. 한 작가는 자신의 일생일대 역작 ‘세계평화지도’로 대한민국의 평화통일을 염원했다. 이로부터 23년 세월이 흘러 한 작가는 평화로 세계를 감동시키는, 어느덧 UN 22개국이 인정하는 국제적인 인물로 우뚝 올라섰다. 특히 중국의 관영 일간지 인민일보를 비롯해 신화사(新華社), CCTV, 중동 걸프타임스 등 세계 주요언론들이 앞 다퉈 다룰 정도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평화운동가로서의 삶과 소름끼치는 예술혼을 모두 함께 가지고 있는 한 작가.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어찌 보면 독립투사 같이 한 가지만 바라보고 달려온 한 작가에게 1cm크기의 세필 한글 붓글씨가 어떻게 세계를 감동시켰는지 들어봤다.

세계평화지도에 왜 한글을 선택하였는가

“한글을 재료로 선택한 것은 한글이 가장 ‘한국적인’ 정신을 담은 글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글의 초성, 중성, 종성의 조화는 화합을 의미하기 때문에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담기에 그 만큼이나 좋은 것이 없었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한 의미는 ‘화합’이라 생각한다. 한글은 자음과 모음이 만나서 만들어지는 유일한 소리 문자다. 화합 역시 혼자만 있어서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두셋 이상이 모여서 하나가 되는 것이 화합이다. 이처럼 자음과 모음이 만나서 조화를 이루어 내는 것처럼 제 작품도 한글 한자 각각이 모여서 수만 자가 되고 비로써 세계평화지도가 완성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한글을 선택했다.”

‘대한민국 평화·화합의 지도’를 그려 전국에 기증한 배경이 궁금하다

“대한민국의 평화와 동서간 화합의 진정성을 담아서 기원하는 뜻에서 1997년부터 2003년까지 6년 여에 걸쳐서 1cm 세필 붓글씨 13만 8000자로 가로 1m 80cm, 세로 2m70cm 크기의 ‘대한민국 평화·화합의 지도’작품을 완성했다. 작품의 내용은 ▲각계각층의 평화 ▲동서화합 ▲우리는 하나 ▲희망 ▲나라사랑에 관한 글과 전국 각도의 애향심이 담긴 시를 담았다. 2002년 경기도청을 시작으로 경북도청, 강원도청, 제주특별자치도청, 전남도청 순으로 아무 조건 없이 우리나라 각 도청에 기증했다.”

뉴욕한국문화원에서 전시 역사상 가장 큰 ‘한반도 평화지도 대작’을 전시했다고 알고 있다. 어떤 작품인가

“뉴욕평화특별전은 세계에 한국의 문화와 한글을 알리고 한반도 평화를 알리기 위해 열렸다. 뉴욕한국문화원이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했다. 뉴욕 한국문화원은 세계예술의 중심지인 뉴욕 맨해튼 에비뉴 57가에 위치하고 있었다. 당시 작품의 크기는 세로 7m 가로 4m 50cm 크기로 세계에서 가장 큰 ‘한반도 평화지도’이다. 나는 한국인으로서 인내와 끈기로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의 평화를 기원하는 대표적인 예술작품을 선보였다는 찬사를 받아서 당시에 큰 보람을 느꼈다. 특히 UN본부가 있는 뉴욕에서 미국 뉴욕 한국문화원이 1979년 12월5일 개원 이래, 한미 수교 60년 만에 있어서 처음으로 대통령 부인인(김윤옥 여사)이 전시회를 관람하기도 했다.”

세계 최초로 UN본부 22개 국가기념관에 세계평화지도 작품이 영구소장 되었다고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큰 영광이고, 국가적으로 값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당시 UN 한국대표부에서 큰 역할을 했고, 정말 수고가 많았다. 특히 유엔본부에서는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한 작가의 15년의 염원을 헛되이 생각하지 않고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작가’로 인정하였다. 현충일인 2008년 6월 6일 일본을 시작으로 미국, 러시아, 중국, 캐나다, 독일 등. 유엔본부 22개 국가에 세계최초로 영구소장 특별전시중에 있다. 감사하게도 유엔본부 22개 국가로부터 ‘세계평화지도 기증증서’라는 외교문서를 받아서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와 외교통상부에서 보관 중이다.”

한석봉의 후손으로 한글로 세계평화지도를 창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1993년도 김영삼 문민정부(文民政府)때 세계화바람이 불던 때가 있었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 의 한 작가로서 어떻게 하면 한국인으로서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릴 수 있나 고민했다. 또 한반도평화,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을까! 고심하던 중이었다. 그때 꿈에서 예시를 받아 가로 2m, 세로 2m 70cm 크기의 ▲각 나라 국가의 문화역사 ▲세계평화를 염원하는 시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 ▲성경말씀 등을 한한국 작가만의 독특한 서체인 ▲평화체 ▲통일체 ▲화합체 ▲나눔체 ▲희망체 6종의 새로운 한글서체를 개발하고 완성했다. 오자는 반드시 없어야하고 0.1mm 오차도 없이 색감은 인주의 직인을 수만 번이나 직접 찍어서 ▲서예 ▲미술 ▲지도 ▲측량을 융복합해 서예회화라는 종합장르를 개척했으며, 현재까지 36개 국가 세계평화지도를 완성하게 되었다.”

중국 연변대 예술대학 객좌 교수는 한국인 처음으로 알고 있다. 언제부터 초빙 됐는가

“도올 김용옥 선생도 연변대 객좌 교수로 임용된 것으로 알고 있다. 예술대학에서는 처음이다.무엇보다 한중 문화의 소통과 우리민족 역사의 전승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중국 연변대 예술대학 객좌교수로 2014년 12월부터 3년 임기로 임용이 되어 현재 재직 중에 있다.”

한국인이 최초의 중국 평화지도를 완성해서 인민일보에 조명을 받았는데

“중국은 동북아의 평화와 세계평화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가이다. 무엇보다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서 한중 양국의 평화발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009년 중화인민공화국 60년을 기념해서 4년여에 걸쳐서 한글 수만 자로 ▲중국의 문화와 역사에 관한 글 ▲공자, 맹자, 노자의 평화사상에 관한 글을 담아 가로 7m, 높이 4m80cm 크기의 대형 특수한지를 제작해 중국역사상 최초의 초대형 중국평화지도를 완성했다. 완성 뒤 한국 사람으로서 보람을 느끼고, 많은 분들이 격려를 해 주셔서 요즘 정말 기분이 좋다. 이례적인 인민일보의 4페이지에 걸친 언론보도로 지금도 중국인들이 중국평화지도를 보러 김포 작업실을 자주 방문하고 있다. 요즘 사드문제로 한중관계가 불편한 데 다시 좋은 관계로 빨리 회복되길 바란다.”

카타르 최대 영자신문 GULF TIMES(걸프 타임스) 등 주요언론사 보도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36번째 국가 평화지도로 대한민국과 카타르국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서 완성했다. 카타르 최대 영자신문인 GULF TIMES(걸프 타임스) 전면에 보도되어 기쁘면서도 큰 보람을 느꼈다. 폭 220cm 길이 300cm의 전통 한지에 가로와 세로 1cm의 한글 약 5000자를 사용해 카타르 평화지도를 그려냈다. ▲한글로 카타르의 문화 ▲역사와 헌법을 기록하였고 ▲아내 윤소천 시인의 카타르의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는 시도 담았다. 또한 작품 중앙에는 ‘신이시여 카타르국을 지켜주소서’ 라는 원형 문구 안에 인주를 사용해 카타르 국기와 오릭스(카타르를 상징하는 사막 양), 그리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여러 사람을 표현했다. 여러모로 국가를 위해 수고하신 박흥경 駐 카타르 대한민국대사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드리고 싶고, 2017년도에는 카타르 초청으로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피카소의 그림을 떼어내고, 그 자리에 한글 프랑스평화지도 작품을 붙였다고 알고 있는데 그 이유는

“2002년도 한글로 된 프랑스 평화지도를 프랑스대사관에 전달했다. 저의 작품을 처음으로 인정해준 외국인은 프랑스와뎃스쿠엣 프랑스 대사이다. 그분 덕분으로 세계로 가는데 큰 발판이 되었다. 주한 프랑스대사는 대사관 프랑스 공간에 있던 피카소의 그림을 떼어낸 후 “피카소가 그림을 그리는 데 20년, 리갈이 3개월이 걸린반면, 한한국 작가의 작품은 1년이 걸렸습니다.” 라며 리갈의 그림과 나란히 걸었다. “오늘부터 한한국 이라는 작가는 ‘한국의 리갈’”이라며 찬사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평화를 주제로 세계를 대상으로 예술활동을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평화란 상대를 인정하고 신뢰하는 속에서 유지되는 것이다. 평화지도를 그릴 때마다 매번 느낀다. 글자 한자 한자는 그 나라의 국민들이고, 작은 글자가 모여 한 나라의 국가지도가 되어 화합을 이룬다. 내 나라가 소중하면 다른 나라도 소중하고, 내 땅이 소중하면 다른 나라 땅도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평화란 욕심내지 않고 서로 인정하고 신뢰하면 평화는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지구상 유일하게 분단된 나라에 살면서 평화가 그만큼 절실하기 때문에 예술로서 평화활동을 하고 있다.”한한국작가 인터뷰 사진

남북분단 이후 최초로 1원에 북한에 작품을 보냈다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5년 동안 매일 잠을 2시간 정도밖엔 청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간을 할애한 작품이다. 북측으로 간 ‘우리는 하나’작품은 한글 8만자로 ‘통일’(8만자)과 함께 창작되었다. 2점 중에 1점인 ‘우리는 하나’는 북한에 기증하고 ’통일‘은 소장중이다. 두 작품이 서로 마주보면서 하나가 되어서 통일을 이룬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우리는 하나’의 왼쪽 상단을 보면 붉은 색으로 ‘평화도’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이는 작업 당시 무릎에서 흘러나온 피를 인주에 섞어 하나하나 찍은 말 그대로 피와 혼이 결합한 작품이다. 저의 염원이 통한 것일까! 이 대작은 2008년도 4월 뉴욕한국문화원에서 발표를 하게 되었다. 통일부 대북반출승인서에는 반드시 작품가격을 기재하게 되어 있었다. 북측에서 어떤 조건이냐고 물어왔을 때 조건이 ‘없는 것’이 조건이다. 0원을 쓰고 싶었지만 전산상의 표기를 할 수 없어서 1원에 대북반출승인서에 기재하여 ‘우리는 하나’를 기증하게 되었다. 그때 당시 남북분단이후 최초로 민간 작가로는 북한 문화성으로부터 ‘평화통일을 염원하여 작품을 창작 완성하고 세계평화보장에 기여’한 공로로 감사서한(인수증)을 받아 통일부에서 문서를 보관하고 있다. 평양의 조선미술관에서 한 달간 전시되었다고 알고 있다. 전시 후 북한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에 분단 이후 최초로 작품이 걸렸다.”

국회 정론관에서 ‘평양한반도평화특별전’ 기자회견을 했는데

“지난 3월 국회 정론관에서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며 ‘평양한반도평화특별전’ 기자 회견을 가졌다. 세계평화작가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남북의 어려운 현실을 바라봤다. 그 누구보다도 안타까운 심정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북한에서의 ‘평양한반도평화특별전’을 추진하고 싶었다. 특히 그 자리에서 전쟁 중에도 ‘평화의 꽃‘은 핀다고 강조했다. 남북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서라면 평화작가인 제가 먼저 앞장서겠다고 밝힌 것이다. 古 정주영 회장이 소떼 500마리를 몰고 북측에 가신 것처럼 세계평화의 염원이 담긴 세계 36개국 세계평화의 지도 작품들을 평양에서 필칠 수 있도록 북측에 공식 요청한 것이다. 이런 아주 작은 노력이 남북평화와 화해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이었고 지금도 저는 그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한한국 평화작가의 통일이란

“저는 통일이란 소통이고 나눔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국은 서로를 절대 비방하지 말아야하고 정말 진정으로 통일을 원한다면 우선 서로 소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통일부장관 표창을 비롯해 상과 감사패를 많이 받았는데 “감사하게도 크고 작은 상들을 많이 받았다. 이 자리를 빌어서 상을 주신 단체나 기관에 감사를 드린다.”

세계평화작가로서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비롯한 UN 22개 국가와 북한 등에 평화·통일·화합의 지도를 보냈다. 2017년부터는 해당 국가 대사관이나 그 나라를 방문하여 평화지도를 직접 전달을 할 계획이다. 지금까지의 저의 평화운동은 엎드려서 했다면 이제부터는 온몸으로 부딪히며 행동으로 옮기는 평화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작가이력
  • 1968년 전남 화순 출생
  • 세계평화사랑연맹 이사장
  • (사)한국기록진흥원 원장
  • 연변대 예술대학 객좌교수
  • 조선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역임)
  • 문화체육관광부 최우수 작가
  • 한글세계평화지도 명인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16기)
  • 글로벌 자랑스런 세계인, 한국인 대상 공동대회장
  • 한글세계평화지도 명인
  • 김포시 홍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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